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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세입자 입장에서 보는 재개발: 권리금과 이주 대책의 현실

소유권 없는 사람들의 현실

재개발이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새 아파트, 부동산 가치 상승, 도시 환경 개선 등의 긍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하지만 같은 재개발이라도 세입자의 시선에서 보면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세입자는 건물이나 토지의 소유자가 아닌 ‘사용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비사업에서 가장 후순위 이해관계자로 분류된다. 조합원에게는 분양권이 주어지고, 건물주에게는 감정평가에 따른 보상금이 지급되지만, 세입자에게는 이런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장기간 임차해 상권을 형성한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 혹은 10년 넘게 한 동네에 거주한 고령 세입자에게 재개발은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통보로 느껴진다.

세입자 입장에서의 재개발


이 글에서는 세입자의 입장에서 재개발을 바라보며, 권리금 보상 문제와 이주 대책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권리금 보상은 왜 항상 누락되는가?

세입자 중 특히 상가 임차인의 경우, 수년간 형성해온 권리금이 가장 큰 자산이 된다. 권리금에는 영업노하우, 고정고객, 입지 프리미엄, 인테리어 투자비 등이 포함돼 있지만, 재개발 보상 항목에는 권리금이 아예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문제는 법적으로도 사각지대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는 세입자에게 이주비 또는 이전비를 일부 지원할 수는 있지만, 이는 극히 소액이며 권리금의 가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실제로 서울 성북구의 한 소상공인은 재개발로 인해 가게를 비우게 되었지만, 8년간 쌓은 상권의 권리금 4,000만 원은 단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건물주는 '재개발이니 임대계약은 자동 해지'라며 나가달라고 통보했고, 조합은 세입자는 보상 대상이 아니다 라고 일관했다.
결국 그 상인은 원래 있던 상권 근처에서 다른 가게를 얻지도 못했고, 생계 기반을 잃은 채 업종 변경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이처럼 권리금 보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제도적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세입자는 언제든지 손실을 떠안고 퇴거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주 대책은 존재하지만, 실효성은 없다

재개발 구역 내 세입자를 위한 이주 대책은 형식상 존재한다. 조합은 사업계획서에 세입자 현황 조사, 임시거처 마련, 이주 일정 계획 등을 포함해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제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이러한 계획들이 행정 문서에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거세입자의 경우,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지 않아도 '재개발로 인해 철거가 결정되었다'는 명분으로 조기 퇴거를 요구받는 사례가 허다하다. 조합 측은 세입자에게 이주 보상금을 지급하긴 하지만, 금액은 대체로 200~30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 금액으로는 같은 지역 내에서 유사한 주거지를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고령자나 장애인 세입자의 경우, 정든 동네를 떠나야 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부담이다. 이들은 새로운 지역에서의 적응이 어렵고, 병원, 약국, 복지센터 등과의 연결이 단절되면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된다.
예를 들어, 인천 부평구의 한 정비사업 구역에서는 고시원에 거주하던 고령 세입자가 이주 후 거처를 찾지 못해 일시적으로 노숙 상태가 된 사례도 있었다. 제도는 있지만 접근성이 낮고, 지원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보호로 작동하지 않는다.

 

제도적 해결을 위한 과제와 현실적인 대안

재개발 사업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확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첫째, 권리금 보상 기준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상가 임차인의 권리금이 인정될 수 있는 조건과 보상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여, 건물주나 조합의 재량에 따라 임의로 무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 세입자 대표의 사업 참여 보장이 필요하다. 현재는 조합원이 아닌 세입자가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방법이 없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에서는 세입자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법적 의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이주 대책은 단순히 임시 주택을 제공하는 데 그쳐선 안 된다. 생활권 유지, 대체 상권 정보 제공, 임대료 차액 지원 등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는 세입자 전담 이주 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일정 금액 이상 이주비를 직접 지급하는 구조도 고려할 수 있다.
재개발은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 내 사람들의 삶을 다시 설계하는 과정이다. 세입자들은 그 도시의 소비자이자 노동자이며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다. 이들의 삶을 배제한 재개발은 결국 사람 없는 도시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